사진이야기

설악의 노을과 운해

바람소리 0 37242
길위에 서면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
서로 바삐가며 의미없이 지나치는
많은 사람들 속에 서 있으면 무감각 해질수도 있는 삶인데
그속에서 어떤 날은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고 싶을때가 있습니다.
이런날은 아무 생각없이 배낭하나 짊어지고 산으로 갑니다.




설악산을 다녀왔습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싣고 설악산으로 갔습니다.

한계령매표소에서 시작되어 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길은 끝도 없이
길게 이어진 길을 걷고 또 걷습니다.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어도
산길을 따라 한발 한발 힘겨운 발걸음을 내딛다 보면

비록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혼자서 산에 올랐을지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고, 나무가 되어 봅니다.
조용히 거니는 것만으로도 자연과 함께됨을 느낄수 있습니다.

낯선이의 몸을 간지럽히다 사라지는 바람도 되어보고
차가운 소나기 가득 머금은 구름이 되어보고
주고 또 내어주고도 다시 내어줄것을 찾는 나무도 되어보면서

오랫동안 머리를 짓눌려고 있었던
수많은 고민과 번뇌들도 잠시동안은 잊을수 있습니다.

능선에 서면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곳이 미처 이름이 붙지 않은 능선이라도 해도 바람이 불어댑니다.
한겨울 산에서 맞는 바람은
바람소리만 높기만 한것이 아니라
뼈 깊숙히 전달되어 몸을 숙이게 만드는 강인한 바람입니다.

어린시절 학교 운동장과
비좁은 골목길에서
저녁 노을이 온천지에 내릴 때까지 정신없이 뛰어 놀다가
어머니의 커다란 고함소리에 깜짝놀라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를 묵묵히 밟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땀을 식히라며 불어대던 그 바람과는 반대되는 바람입니다.




한계령으로 가기전에
잠시 들른 휴게소에서 하늘이 축복을 내려준다.






이른아침부터 길로 나와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
어느 길에서 시작했던지 위로 난 길을 따라 걷게 되면
결국엔 한번은 만나게 되는 사람들....
정해진 길에서 멀어짐을 즐기는 사람들....






꼬리에 꼬리를 물고있는 능선마다
어느 하늘에서 내려왔는지
구름들이 무수히 많이 피어오르기 시작하고
걸어가야만 할 길이 많았던 이는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그길위에 오래동안 서버린다.






陵波
굽이 치는 능선위로 하얀 파도가 폿말을 일으키며
모든 사물을 삼겨버릴 태세로 몰려오니 나는 어디로 숨어야 하는가?
체념한채 제자리에 서서 눈만 감고 서 있을뿐
눈을 떠면 또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테이니....
하루에도 수십번씩 모습을 바뀌는 산은 위대하다.






구름을 뚫고 우뚝솟은 미시령이여...
수많은 세월속에서 추위와 바람과 싸우며 그 자리에 서있을지언데
어찌하여 그 짧은 순간에 섬이 되고 싶었는가?
아침이 되면 사라져 버릴 섬일지라도
잠시나마 꿈을 이루고자 한다면 내 너를 이제 섬이라 부르리라.






설악산 이루고 있는 봉우리들
그 고운 이름들을 누가 일일히 지었는지 술이라도 한잔 사주고 싶다.
그 고운 이름만 듣고 있으면 가슴가득 열정이 피어오르게 만들었으니....
신선봉이여, 범봉이여, 세존봉이여, 황철봉이여, 신선산이여.....






발아래 구름은 바다되어 유유히 흐르고
힘겹게 발을 딛은 대청봉에서
또다시 이런 광경을 10번만 오르고 난뒤에
산신이 다시 보여 준다면 10번을 훨씬 넘게도 올라도 좋다.
백번을 넘게 올라도 이런 광경을 볼날이 과연 올련지....






여름 휴가철, 때론 온산을 고운빛으로 덮은 단풍철.....
대청봉을 까만 발자욱으로 무수히 덮었었던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칼바람 부는 대청봉엔 추위, 바람뿐
사람이라곤 아름답게 지는 일몰에 눈돌릴 기운도 없이
힘없이 늦은 길을 재촉하며 내려가는 산꾼뿐이다.





혼자 서있는 대청봉
추위와 강풍에 자신의 내면을 찾을 사이도 없이
바람이 약한 곳에 숨어 해가 떨어지는 것만 쳐다본다.
해가 저물고 오늘이 지나고 나면
뜬눈으로 맞이해야만 하는 아침이 올지라도
다시 없는 오늘을 맞이한 날을 감사한다.






불빛이라곤 멀리 속초인근의 불빛만 보이는 어두운 밤
도시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이 하나 없는 사람에겐
밤은 평온할 따름입니다.

오늘 산에서 있었던 일만 기억하면 됩니다.
내일 갈길을 머리속으로 되새기만 하면 됩니다.
마음 급하게 먹을 필요가 없는 산골의 밤은 깊습니다.

백두대간을 이곳 저곳 넘어서는 바람이 세차게 불어대고
그렇게 설악의 밤은 중청대피소의 밤은 소리내며 깊어갑니다.

이른아침 대청봉에서 시끄럽게 맞이하는 일출을 포기하고
햇빛이 내리기 전에 내려가는 산은 고즈넉하기만 합니다.
아무도 내려가지 않은 눈이 수북히 쌓인 산길을
혼자서 내려가며 신선이 되어봅니다.

하지만, 이날 설악의 일출은 대단했습니다.
대청봉에 오르지 않은 것을 많이 후회하며
한가지를 얻으면 한가지를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아침과 저녁이 공존하는 달빛도 사라지지 않은 아침
설악은 고운 아침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아침빛에 물들은 공릉능선
온가지의 색으로 물들었던 가을에 이어
다시 보니 감격할 따름이다.





그토록 애타게 그리던 공릉능선.....
산에 서면 어느 누구보다도 대범해지는데
추위와 커다란 함정처럼 도사리고 있을 눈의 위험에
단한번 비굴하게 굴복하고만 초라한 나의 결정이
다음 해에도 또다시 반복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면, 겨울에 다시 설악을 찾을 이유가 없다.





설악을 더욱 빛나게 하는 구조물





가고 싶어도 오를수 있는 산길이 막힌 지금
연초록으로 휩쌓일 날만을 기다립니다.
보이지 않아도 그자리 그곳에서
아름다움을 밝히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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